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성 정치학 (문단 편집) ==== 장 주네: [[바텀]]이 바라본 남자들의 세계 ==== > "살아 있는 남성 작가 가운데 주네는 최고의 문학적 재능으로 우리 시대의 성 신화를 초월한 유일한 사람으로 보인다." > > "현대 작가 중에 유일하게 주네만이 여성을 억압당하는 집단이자 혁명적 힘으로 간주했고, 스스로를 여성과 동일시하기를 선택했다. 그 자신의 특이한 내력과, 빼앗긴 자들에 대한 그의 분석은 그를 불가피하게 경멸당하고 예속되는 상대적인 존재들에게 감정이입하게 이끌었다." > ----- > - p.66; 693 위의 세 사람들을 보노라면 똑같은 [[남성우월주의]]자이자 극렬 [[여성혐오]]자들인데도 서로가 전부 깨알같이 다른 것을 볼 수 있다(…). 여성을 자신의 숭배자 취급한 로렌스, 여성을 자신의 [[더치 와이프]] 취급한 밀러, 여성을 [[Exterminate|말살해야 할 대상]]처럼 여긴 메일러라고 나눌 수 있겠다. 심지어 이들은 남성에 대해서도 관점이 다 다르다. [[동성애|자신보다 우월한 남성에게 기꺼이 엉덩이를 내밀 준비가 된]] 로렌스, [[동성사회성|자신의 섹스 무용담을 들어 줄 청중을 원했던]] 밀러, [[호모포비아|진정 남자다운 남자들과 함께 여성성을 박멸하고 싶어했던]] 메일러로도 나눌 수 있는 것이다. 하지만 밀렛의 관점에서, '''위의 세 사람들은 모두 하나의 공통점을 공유하는데, 모두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에 공모하고 있다는 것이다.''' 그리고 이들의 이러한 성향과 대조하기 위해, 밀렛은 [[프랑스]]에서 작가 한 사람을 데려온다. 그리고 밀렛은 장 주네의 문학세계를 통해 '''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를 어떻게 전복시킬 수 있을지 고민한다.''' 이번에도 앞에서처럼, 먼저 주네가 '''주인공을 묘사하는 방식'''을 살펴보자. 주네의 작품들 속 주인공은 앞의 세 사람들과는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. 메일러가 그렇게나 [[극혐]]하는 [[동성애자]], 심지어는 그것도 (오늘날 [[퀴어]] 진영에서 통용되는 그런 의미의 동성애자가 아니라) 이성애자들이 동성 간 [[항문성교]]를 위해 필요로 하는 소위 '''"[[바텀]][[알바]]"''' 인 것이다. 주인공은 그렇게 늘 잔혹한 포주와 손님들에게 [[등짝을 보자|등짝을 보이는 삶을 살아가고]], 언제나 그들에게 "이 더러운 [[남창]] 놈!" 같은 모욕을 듣는다. 따라서 주네의 주인공에게 남성들이란 "동료 남성들" 이 아니라 "그들 남성들" 이 된다. 게다가 주인공은 '''사회적으로도 보잘것없다.''' 주인공은 [[거지]]에다 [[노숙자]]이고, 변변히 내세울 것이라고는 그야말로 [[괄약근]]밖에는 없는, 사회의 밑바닥의 밑바닥을 구르는 인생이다. 밀렛은 이런 주인공을 내세우는 주네에 대해, '''우리 사회에 남성성이 여성성을 억압하는 권력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보여준다'''는 점에서 호평한다. 밑바닥의 시점에서 볼 때, 성 역할은 날것 그대로 강자와 약자로 나누어진다. 주인공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는 그 어떤 체면도, 점잔도, 예의도, 기사도도 없는, 그야말로 강자가 약자를 거리낌없이 지배하는 거친 논리가 성립한다. [[채털리 부인의 연인|로렌스 식의 빅토리아적인 다정함]]은 가식일 뿐이라는 것이다. 이번에는 주네가 바라보는 '''여성 및 섹스에 대한 관점'''을 살펴보자. 밀렛은 주네가 여성성을 묘사할 때 여성들이 남성성의 신화를 조롱하고 배반하며 이를 통해 기쁨을 느끼는 적대적 에로티시즘을 보이는 것으로 묘사한다. 남성성의 억압은 비겁하고도 우스꽝스럽게 연출되고, (로렌스의 엄숙한 분위기와 메일러의 격정에 찬 선전포고에 이를 비교해 보자) 여성 및 여성성을 체화한 주인공 남성은 이를 비굴하게 받아들이는 듯하면서도 이내 행간에서 시니컬하게 비꼰다. 결국 주네의 작품세계는 상당히 '''풍자적이고 [[부조리극]]에 가까운 방식으로 섹슈얼리티를 드러낸다.''' 하지만 이런 소소한 복수극은 결국 사회 그 자체를 바꾸지 못하며, 작품 내에서도 '''비극적인 엔딩'''으로 이어진다. 이 엔딩은 절망적이지만 [[순교]]적인 승리로서, 주인공 혹은 여성들이 자신의 비천함에도 불구하고 내면의 열정과 인간으로서의 고귀함을 잃지 않음으로써 숭고함으로 승화되는 것이다.[* 예컨대 한 작품에서는 남루한 [[미청년]]의 거지인 주인공이 경찰에게 붙잡혔는데, 소지품 검사를 하다 보니 '''[[바셀린]] 로션'''이 나왔다(…). 경찰관들이 어이없어하며 킬킬거리는 동안, 주인공은 수치스러워하며 움츠러드는 대신 오히려 당당해지기로 마음먹는다. 이때 주인공은 "그 바셀린 로션을 버리느니 차라리 피를 흘리겠다" 고까지 독백한다.] 때때로 주네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오히려 "약함으로 강함을 이기는"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.[* 예컨대, 《Journal du voleur》 에서는 자신을 강간하는 상대방 남성의 팔에 입을 맞추고, 상냥하게 보듬어주고, "예쁘다" 고 말하는 장면들이 나온다. 당연히 상대방은 미쳤냐며 기겁하지만, 마침내 그들의 무감동함은 전복되고 주인공에게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게 되는, 여성성의 상징적 승리가 나타나기도 한다.] 그런데 밀렛은 주네의 후기 작품 3개, 《Le Balcon》, 《Les Negres》, 《Les Paravents》 를 엮어서 주네의 인식에 변화가 나타났다고 비평을 시도한다. 이전에는 순교 엔딩에서 낙담과 단념, 허탈감이 자욱하게 드러났다면, 이후 주네는 '''타협하지 않는 혁명가와도 같은 노선'''을 걷게 되었다는 얘기다. 특히 이 시절에 주네의 관심은 단순히 남성성 대 여성성의 문제를 넘어서서 [[인종차별]], [[신분제|신분차별]], [[식민지]], [[제국주의]] 등에 대해서까지 확장되며, 억압받는 자들이 어떻게 억압을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까지 통찰한다. 즉, 이때부터 주네의 작품 속 약자들은 상호경멸과 모욕을 멈추고 연대하여 투쟁하게 되며, 이들이 자기 자신의 존엄성, 정의, 분노를 인식하는 데까지 발전해 간다. 특히나 《Le Balcon》 에서 주네는 혁명도 결국 '''대안적 가치의 체제가 있을 때 성공할 수 있는 것'''이지,[* 이를 밀렛의 "성 혁명" 에 대입해 보면, 성 혁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들 사이에 [[가부장제]] 없이도 우리 사회가 건강하게 잘 굴러갈 방법이 있다고 믿고 있어야만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.] 대안이 없을 때의 새로운 질서는 결국 과거의 질서와도 같다고 말한다. 대안이 없다면 억압받는 자들은 지배자를 그 권좌에서 끌어내린 후 [[가해자가 된 피해자|자신이 대신 권좌에 올라앉게 마련이다.]] 하지만 정녕 혁명가라면, 오히려 '''그 권좌 자체를 치워 버리는 것이 혁명의 완성이다.''' 주네의 작품들 중 《Les Paravents》 은 프랑스에 점령된 알제리를 배경으로 하며, 중첩된 식민지 경험 속에서 혁명의 도화선은 알제리의 [[할머니|힘 없는 한 노파]]에게서 시작되었다.[* 이 할머니 왈, "지난 천 년 동안 우리 [[여자]]들은 너희 알제리 남자들의 행주로 살았다. 그리고 지난 백 년 동안은 너희 남자들 자신이 행주가 되었지. 너희들 덕분에 저 [[프랑스]] 신사들의 신발들은 십만 개의 번쩍이는 태양처럼 반짝이게 됐더구나." 물론 밀렛은 언급하지 않았으나, 이는 현대에까지도 [[탈식민주의]] 배경의 여성 이론가들이 이른바 "식민지성" 을 [[젠더]]와 결합하여 논의할 때에도 굉장한 시사점을 주는 대사일 수 있다.] (로렌스가 비슷한 배경에서 [[파시즘|파시스트 쿠테타]]를 꾸미는 [[군인]] [[남성]]들을 주요 인물들로 설정했음을 상기해 보자)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알제리 봉기군은 [[프랑스군]]과 전면적으로 맞붙게 되는데,[* 여기서 주네는 봉기군의 폭력은 가능한 것이라고 긍정하지만, 밀렛은 봉기군의 폭력 자체도 사실은 옹호될 수 없는 것이라며 주네와 관점을 달리한다. 혁명 세력이라고 할지라도 폭력은 쓰면 쓸수록 자멸적이게 될 뿐이라는 것.] 여기서 주네는 '''봉기군이 [[가부장제]]를 깨뜨리지 못함으로써 과거의 질서를 고스란히 답습하는 모습'''을 보여준다. 처음에는 [[유곽]]의 여성들도 봉기에 동참했으나, 이후 봉기군은 이 여성들을 그들의 비참한 자리로 되돌려보냈다는 것. 주네는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서 봉기군이 "새로운 우두머리 패거리" 가 되었다고 다시 비판한다. 주네에 따르면, '''진정 아름다운 혁명은 남성들의 [[영웅주의]]가 아니라 위대한 인간애에 있다'''는 것이다. 그리고 그의 소설 속에서, 이 사실을 기억하는 여성들은 자신들의 비천한 자리로 돌아가서도 자신이 배운 저항의 영혼을 인내심을 갖고 보존했다는 결말로 이어진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